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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신은 익명으로 여행한다- 로랑 구넬

"상상해보게."

듀브레유가 말했다. 

"자네가 살아가면서 어떤 상황을 만나도 거북함을 느끼지 않게 된다면 앞으로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말이야."

"너무 좋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기엔 갈 길이 멀어요......."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실과 맞부딪치는 거야.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두려움의 대상과 맞붙어 싸우러 가는 것이지. 피난처로 숨지 말고. 피난처는 낯선 것에 대한 불안감만 높여 줄 뿐이야."


"하지만 살아가면서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을 전부 멀리하려고 하면, 두려움의 대부분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거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되지.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 알아보는 유일한 방법은 현장에서 확인하는 거야! 우리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깨닫기 이해선, 때로 약간의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게 무엇인지 마음먹고 시험해 볼 필요가 있어."


"과제가 또 있네. 매일 세 번씩 실수를 저지르도록 하게.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네의 허점이 드러나는 행동을 하루에 세 번씩 하는 거야. 어떤 것이든 상관없네. 아주 사소한 거라도 좋아. 내가 원하는 건, 자네가 한동안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허술한 사람이 되는 거야. 언제까지? 허술해도 여전히 잘 살 수 있고, 삶의 질이 떨어지지도 않고, 타인과의 관계도 손상되지 않는다는 걸 자네가 깨닫게 될 때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한가지! 하루에 적어도 두 번씩, 다른 사람들이 자네에게 요구하는 것을 거절하든지, 아니면 그들의 관점에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게. 선택은 자유야."


"상사가 자네를 존중해주지 않아서 괴롭다면, 그가 변하기를 기다리지 말게. 자네가 존중받고 안 받고는 자네에게 달려 있어. 상사로부터 존중받고 싶다면, 그와의 관계 속에서 자네가 선택하는 위치라든가 말하는 방식, 자네가 이룬 성과를 알리는 방법 등 자네 안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봐야 해.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충고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사실 집요하게 못살게 구는 못된 상사도 알고 보면 모든 직원을 공격하는 건 아니야. 그가 아무나 희생양으로 삼는 게 아니라는 소리지."


"누군가를 괴롭히는 자는 자기가 그 사람을 공격하면 틀림없이 부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떄문에 그렇게 하거든. 다른 사람에겐 그만큼 타격이 안 가는데 그에게는 그것이 통한다고 보는 거야."


"그날 아침도 나는 평소처럼 <클로저>를 옆구리에 끼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클로저>를 갖고 다닌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처음에는 눈에 띄게 힐끗거리던 동료들의 시선도 이제는 무관심한 시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대개 사람들은 시련이 닥쳐왔을 때, 자신에게 부당해 보이는 것을 합법적으로 거부하면서 분노나 좌절의 태도로 반응한다. 하지만 분노는 우리의 귀를 멀게 만들고, 좌절은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가 성숙해지기 위해 주어진 기회를 그냥 놓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역경과 실패만 늘어날 뿐이다. 시련은 운명이 우리에게 증오심을 품고 달려드는 순간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시긴이다."


"The real voyage of discovery consists not in seeking new landscapes but in having new eyes."- Marcel Proust


"부당한 질책 앞에선 특히나 자기가 옳다는 걸 증명하려고 해선 안 돼. 안 그러면 자네들이 그 게임에 말려드는 거야!"

"자네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변명을 할 게 아니라, 오히려 그가 그렇게 하도록 그에게 질문을 퍼부으란 말일세! 그가 피할 기회를 주지 말고. 그가 자신의 질책이 옳다는 증거를 대게 만드는 거야. 자넨 절대로 그의 질책이 부당하다는 걸 증명하려 하지 말게! 다시 말해 그를 진땀 빼게 만드는 거야."

"그를 자신의 방어진지 속으로 밀어 넣게. 그의 말을 믿을 만한 증거를 달라고 요구하고, 그가 막연하게 일반성을 들먹이며 숨지 못하도록 하는 거야. 계속 파고들게. 정확성과 사실성을 요구해. 그가 악의를 가진 자라면 몹시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될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가장 신나는 건, 자네가 공격적일 필요가 없다는 거야. 자네가 처신만 잘하면, 겉으로는 그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아주 부드러운 방법으로 그를 무릎 꿇게 할 수 있지. 말하자면 자넨 누가 봐도 나무랄 데 없이 그를 대하면서, 그로 하여금 자기가 내뱉은 질책과 비난의 말을 정당화하려고 쩔쩔매게 만드는 거야."

"그래서 잘만 하면, 이후로는 그가 자네를 평온하게 놔둘 가능성이 크지."


이고르의 말이 떠올랐다.

'우린 사람을 바꿀 수 없어. 다만 그들에게 하나의 길을 보여주고 그 길을 가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도와줄 수 있을 뿐이지.'


내 두려움의 대부분이 생각이 만들어 낸 산물임을 나는 발견했다. 현실은 종종 무시무시한 용의 형상을 입고 나타나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가 정면으로 직시하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내가 바랐던 건 정확하게 무엇이었을까? 내가 만일 운전기사를 두고 뒷좌석에 편히 앉아 있는 사람을 보았다면, 나 역시 그를 부러워하며 감탄했을까? 물론 아니다. 확실히 아니다. 또 하나의 착각일 뿐. 게다가 누가 알아봐 주기를 바란다는 건 참으로 헛된 일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의 시선을 받는다고 해서 결여된 자존감이 보상받을 수 있을까? 외부에 있는 것은 내면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없다. 

 

상처받은 주인공이 운명을 만나거나 큰 사건을 겪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심리 소설 특유의 그런 클리셰적인 요소들을 잊을만큼 이 책은 정말 재밌었다. 주인공이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과 평상시에 내가 하는 고민들을 하고 있다는 점에 공감하며 열심히 읽었다. 주인공이 성장해나가는 모습에서 느끼는 기쁨보다 주인공의 멘토/조언자(?)인 이고르가 하는 상담에 더 관심이 갔다. 뭔가 나도 변할 수 있다, 내가 가진 고민들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것에 설렘을 느끼며 읽어갔다. 중간에 물론 이고르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도 내가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작가가 머리를 잘 쓴 것 같다. 만약 그에 대한 궁금증이 없었다면 책에 대한 몰입도가 다소 떨어졌을 것이다. 

아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는데 제목이 왜 신은 익명으로 여행한다 일까. [Dieu Voyage Toujours Incognito]. 신이 앨런과 이고르를 만나게 했기 때문인가? 이고르가 신인가? 이고르가 익명으로 앨런을 계속 도왔다는 것을 뜻하는건가? 궁금하다.